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블루 앤 화이트(הכחולים-לבני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AFC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때는 아시아권에서 축구 실력이 최상위권에 속했기 때문에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서 꽤나 좋은 성적을 보였고, 한국 국대를 괴롭히는 팀 가운데 하나로 손 꼽혔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럽으로 옮긴 뒤로는 월드컵 진출은 꿈도 못꾸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산마리노나 리히텐슈타인같은 최하위권은 아니고 나름대로 하위권이 아닌 중하위권은 되어서 가끔 도깨비 팀 같은 저력을 보이기는 한다는 게 위안.
이스라엘은 1976년에 정치적인 문제로 AFC에서 축출되었다. 당시 이스라엘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던 중동 여러 국가들이 많았는데 여기에 동조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이 문제가 커져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꼬이기 시작한 것이 1962년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인도네시아가 이스라엘의 초청을 거부하면서였는데, 이 이후 1974년에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북한과 쿠웨이트가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급기야는 월드컵 예선까지도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거부하는 국가가 생기는 사태가 일어나버린 것. 결국 AFC는 1976년에 오일머니의 위세에 굴복해버렸고, 국제 축구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강제로 AFC에 축출해 버린 것이다.이 기사에서 이스라엘이 AFC에서 축출된 자세한 내막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1990년까지 OFC에서 뛰다가 1991년에 UEFA에 가입했다.[3]
FIFA 월드컵에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AFC 소속으로 딱 한 번 나갔다. 여담으로 이때 이스라엘이 아시아 지역예선에 나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중동 국가들+북한이 단체로 불참하는 바람에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은 아시아 3팀+호주+뉴질랜드+로디지아[4] 딱 6팀으로 치뤄졌다.(...)
사실 이스라엘이 운이 좋은 게 당시 한국을 피해서 약체인 뉴질랜드와 1차 예선을 치뤄 4:0, 2:0으로 거뜬하게 이기며 겨우 2경기만 치루고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또다른 국가인 호주는 한국, 일본, 로디지아와 모두 7경기나 치루면서[5] 지쳐있었다. 결국 이스라엘이 호주와의 최종예선에서 1:1, 1:0으로 1승 1무를 거둬 월드컵에 진출했다.
그렇게 올라간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서 이탈리아, 우루과이, 스웨덴과 같은 조를 이뤘다. 놀랍게도 스웨덴과 1:1,이탈리아와 0:0으로 비기는 선전을 펼쳤지만 우루과이에게 2-0으로 패하면서 2무 1패로 조 꼴찌로 탈락했다.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종종 고춧가루같은 활약을 하다가 유로 2000 예선에서 오스트리아를 5-0으로 크게 이기며 스페인에 이어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모처럼의 선전에 이스라엘 총리까지 나서서 유로에 나가면 선수들에게 별도의 상금을 주겠다고 독려했으나 덴마크에게 5-0, 3-0으로 대패하면서 참혹하게 탈락했다. 이때 안방에서 5-0으로 진 후 원정 경기는 포기했는지 경기 전날까지 훈련은 안하고 술먹고 부어라 마셔라 하던 게 밝혀져서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비록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으나 고춧가루 역할을 확실히 해낸 적이 꽤 있다. 오세아니아 예선에서 뛰다가 유럽 예선으로 복귀한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이스라엘은 프랑스, 스웨덴, 불가리아 등과 같은 조가 되었다. 조 꼴찌로 탈락하긴 했으나 강호 프랑스에게 확실하게 고춧가루를 뿌렸다. 당시 이스라엘은 총 전적 1승 3무 6패로 조 꼴찌였으나 그 1승의 제물이 프랑스였다. 1993년 10월 13일 파리 원정에서 프랑스를 3-2로 격파했다. 프랑스가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이겼다면 본선행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고, 프랑스가 단 1점의 승점이 모자라 지역예선에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스라엘이 프랑스를 탈락시킨 셈. 그리고 프랑스가 바로 다음 대회인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스라엘 축구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갔다. 다만 프랑스는 원래 성적이 들쭉날쭉하는 편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프랑스전 승리와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5년이나 차이가 난다. 5년이면 팀을 리빌딩하기 충분한 기간.
당시 지역예선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02년 초에 독일과 친선 경기를 가졌는데 7-1로 참패했다. 당시 경기 도중, 독일 선수 골을 막으려다가 이스라엘 선수 골키퍼나 수비수 등 3명이 같이 공 막으려다가 공과 뒤엉켜 사람 셋이 공과 같이 골대에 들어가버리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국내 신문 뉴스란에서 이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었다. 이 경기는 이스라엘 건국 전인 1934년에 이집트에게 7-1로 진 뒤로 68년만에 대표팀으로 7실점하여 엄청 욕을 먹었다. 당시만 해도 독일은 녹쓴 전차군단이라고 비아냥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우 2000년에 이스라엘은 친선 경기에서 독일과 2-2로 비긴 적도 있었기에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지만 해볼만한 독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졌으니 더 곱배기로 욕먹었던 것. 물론, 비슷한 시기 독일과 친선경기를 가진 쿠웨이트가 7-0으로 참패하고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사우다아라비아는 8-0으로 더한 참패를 독일에게 당했고 독일은 월드컵 준우승까지 차지했지만.
유로 2008 지역 예선에서도 잉글랜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0-0 무승부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해 잉글랜드의 광탈에 한 몫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매번 유로 예선에서 떨어지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모처럼 강호들을 모두 피해서 그리스, 스위스, 라트비아와 한 조로 묶였다. 꽤 해 볼 만한 상대들이었기에 역사상 두 번째이자 UEFA 이적 후 첫 번째 월드컵 진출의 희망을 가졌으나 이 세 나라에 밀려 조 4위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 후 유로 2012 예선에서 라트비아, 그리스와 또 만났다. 라트비아는 이번에 부진했지만 그 대신 그리스와 크로아티아에게 밀려 3위로 탈락이 확정되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러시아, 포르투갈, 북아일랜드, 아제르바이잔, 룩셈부르크와 같은 조가 되었다. 1차전 아제르바이잔 원정 경기에서 고전 끝에 1:1로 비기고 2차전 홈에서 역시나 러시아에 4:0으로 대패하면서 예상대로 북아일랜드와 같이 3위 쟁탈전을 벌일 전망이다. 포르투갈과의 안방경기에서 3:1로 후반 70분까지 앞서면서 이변을 낳는가 했지만 막판 실점을 당하면서 3:3으로 비기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이번에도 3승 4무 2패로 러시아-포르투갈에 이어 3위로서 탈락하면서 예상대로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자기네들이 탈락하면서 포르투갈에게 제대로 엿을 먹였는데 이스라엘 때문에 플레이오프로 떨어진 포르투갈은 독일에 밀려 플레이오프로 떨어진 스웨덴과 상대해야만 한다. 포르투갈은 이스라엘 때문에 승점이 딱 1점이 모자라서 플레이오프로 나가떨어졌다.[6] 그러나 이스라엘이라고 다 만족할만한게 아니었는데 최약체급인 아제르바이잔에게 2경기 모두 1-1로 비겨 이스라엘도 아제르바이잔에게 엿 좀 먹었다(...)
유로 2016 예선에서는 벨기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제치고 3연승으로 1위를 달리며 순항하나 했지만 웨일스에게 홈경기로 0-3으로 완패하며 2위로 떨어졌다. 3위로 추격중인 벨기에와 승점이 1점차라서 마음놓을 상황이 아니다. 결국 4승 1무 5패의 성적을 거두며 4위로 탈락했다. 5위 키프로스가 4승 6패로 승점 1점차였고 꼴찌 안도라는 유럽 동네북이기에 결과는 안 좋았다.
한국과는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 1회 아시안컵에서 처음 맞붙어서 한국이 2-1로 이긴 뒤로 모두 11번 경기를 가져서 한국이 5승 4무 2패로 앞서있다. 그러나 1977년에 가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 (1승 1무, 3-1승,0-0를 기록)을 거둔 뒤로 20년 가까이 경기가 없었다가 1996년 이스라엘 원정 친선경기를 오랫만에 가져 난타전 끝에 5-4로 한국이 이긴 게 가장 최근 경기이다.
자국 레전드로는 요시 베나윤이 있다. 이스라엘인으로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고,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아스날 FC, 리버풀 FC를 두루 거친 선수였다. 볼턴 원더러스 FC에서 뛰었던 수비수 탈 벤 하임도 이스라엘 대표선수. 현재 대표팀에는 브라이턴의 비람 카얄, 호펜하임의 무나스 다부르, PSV 에인트호번의 에란 자하비가 중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PUMA이다.
2. 역대전적
2.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64위'''
승점 2점으로 이집트, 앙골라와 동률이다. 다만 평균 점수[8] 에서 앙골라 · 이스라엘 0.67(승점 2점 / 3경기), 이집트 0.50(승점 2점 / 4경기)로 이집트를 앞서고, 골득실에서는 앙골라에게 1점이 낮아 승점이 같은 세 나라 중 중간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월드컵 랭킹 '''64위'''에 랭크되고 있다. 1970년 월드컵에 참가신청을 했으나 이에 대한 반발로 중동, 북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참가를 거부하여 강팀들이 상당히 빠진 상황에서 로디지아, 호주를 이기고 본선에 올라왔다. 당시엔 아시아협회 소속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의 1970년 월드컵 성적은 '''AFC에 들어간다'''. 아시아 대표로 월드컵에 올라서 나름대로 선전한 끝에 2무 1패 탈락. 특히 대회 준우승국이자 카테나치오를 전세계에 알렸던 이탈리아와 무재배한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이후 1974년에도 아시아예선 참가는 하였으나 전대회 불참을 선언한 팀들과는 반대편[9] 에서 예선을 치뤘고, 중동전쟁의 여파로 1976년 AFC에서 쫒겨나 유럽, 오세아니아를 전전하는 안습한 상황을 이어가다[10][11] 1994년 미국 월드컵부터는 유럽에서 예선을 치르고 있다. [12]
2.2.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11위'''
2.3.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3.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4. 둘러보기
[1] 축구협회 엠블럼이 아일랜드와 아주 비슷하다. 엠블럼은 아일랜드가 먼저 만들었고 흔치 않은 디자인이기에 이스라엘 쪽의 표절이라는 것이 정설이며 공개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다.[2] 히브리어[3] 이 사건의 여파로 FIFA 규정상 축구협회에 정치나 종교가 개입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되었다.[4] 현재 짐바브웨로, 지역적으로는 아프리카이지만 백인우월주의에 반발한 타 아프리카 국가들이 짐바브웨와의 예선을 거부했기에 아프리카 축구연맹에서 제명되었다.[5] 로디지아와 2무를 거두는 바람에 재경기를 치뤄 3-1로 겨우 올라왔다.[6] 러시아 7승 1무 2패 승점 2'''2''', 포르투갈 6승 3무 1패 승점 2'''1'''. 차라리 포르투갈이 이스라엘 상대로 1승 1패를 달성했으면 포르투갈은 러시아와 승점이 22점으로 같아져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였다. 즉 포르투갈은 이스라엘을 '''한번만 이기면 되는'''거였는데 그 한번을 못이겨서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그나마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을 제치고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 독립 이후로 계산[8]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9] 아시아 2조 한국,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태국[10] 1978년 아시아 2조(한국, 일본, , 이스라엘), 1982년 유럽 E조, 1986~1990년 오세아니아[11] 1990년에는 오세아니아에서 1등을 거둬 남미의 콜롬비아와 플레이오프 통산 1:0으로 아쉽게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12] 마찬가지의 이유로 올림픽 참여 역시 원래 아시아였다가 유럽올림픽위원회으로 들어간 편.[13] 아시안컵 진출 횟수 비율. AFC에 있었을 때만 계산함.